기능 구현만으로 이기는 소프트웨어가 어려워진 시대, 제조 도메인을 보는 이유
AI와 Vibe 코딩으로 구현 장벽이 낮아진 시대에, 주니어 개발자가 제조 도메인에서 어떤 차별화 가능성을 찾을 수 있는지 정리합니다.
이 글은 특정 회사의 업무나 내부 정보를 다루지 않고, 공개 자료와 개인적인 학습을 바탕으로 제조 도메인의 가능성을 정리한다.
주요 독자: AI와 Vibe 코딩 시대에 “구현만 잘하는 개발자”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봐 불안한 주니어 소프트웨어 개발자.
요약
- 순수 소프트웨어가 끝난 것은 아니다. 다만 기능 구현만으로 이기는 순수 소프트웨어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 AI 코드 도구가 확산되면서 단순 구현의 희소성은 낮아지고,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는 능력의 중요성은 커지고 있다.
- 얇은 생산성 도구나 B2C SaaS는 구현보다 유통, 브랜드, 자본, 사용자 네트워크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수 있다.
- 제조 도메인은 현실의 업무 흐름, 설비, 품질, 자재, 이력 데이터가 얽혀 있어 단순 기능 구현만으로 풀기 어렵다.
- 그래서 제조 도메인은 주니어 개발자가 문제 정의, 데이터 모델링, 업무 flow 설계, 시스템 사고를 훈련하기 좋은 영역이 될 수 있다.
들어가며
요즘 주니어 개발자가 느끼는 불안은 예전과 조금 다르다. 예전에는 “내가 코드를 충분히 잘 짤 수 있을까?”가 큰 고민이었다면, 이제는 한 가지 질문이 더 붙는다.
“AI가 코드를 이렇게 빨리 만들어주는데, 나는 무엇으로 차별화해야 하지?”
Vibe 코딩을 해보면 이 불안은 더 커진다. 간단한 CRUD, 랜딩 페이지, 관리자 화면, 작은 생산성 도구는 생각보다 빠르게 만들어진다. 예전 같으면 며칠 걸렸을 기능이 몇 시간 만에 모양을 갖추기도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기능을 구현하는 능력만으로 앞으로도 충분할까?”
“내가 만드는 앱이 다른 사람이 AI로 만든 앱과 무엇이 다를까?”
“결국 마케팅을 잘하거나, 돈이 많거나, 이미 사용자를 가진 사람이 이기는 것 아닐까?”
이 질문은 꽤 현실적이다. 하지만 여기서 결론을 너무 세게 잡으면 위험하다. “순수 소프트웨어는 끝났다”라고 말하면 너무 넓고 거친 주장이다. 여전히 좋은 소프트웨어 회사는 나오고, AI 시대에도 소프트웨어는 계속 중요해질 것이다.
더 단단한 주장은 이것에 가깝다.
순수 소프트웨어는 끝난 것이 아니라, 기능 구현만으로 이기는 순수 소프트웨어가 어려워졌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구현 너머의 가치가 더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어떤 문제를 고를지, 어떤 사용자의 흐름을 이해할지, 어떤 데이터를 남길지, 어떤 제약을 시스템 안에 담을지 결정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나는 이 관점에서 제조 도메인을 보고 있다. 제조업은 오래된 산업이지만, 모든 업무가 충분히 디지털화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제조 도메인의 소프트웨어는 단순히 화면과 버튼을 만드는 것보다, 현실의 업무 flow를 이해하고 데이터로 연결하는 일이 중요하다.
1. 구현 장벽은 낮아지고 있다
AI 코드 도구는 이미 개발자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Gartner는 2028년까지 기업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75%가 AI 코드 어시스턴트를 사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3년 초 10% 미만이던 수치와 비교하면 큰 변화다.
이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개발자가 필요 없어졌다”가 아니다. 더 정확히는, 단순 구현 자체의 희소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작은 웹 앱을 끝까지 만드는 것만으로도 꽤 강한 신호가 될 수 있었다. 로그인, 게시판, 검색, 관리자 페이지, 배포까지 혼자 해내면 “이 사람은 만들 수 있구나”라는 증명이 됐다. 하지만 이제는 그 증명의 강도가 약해지고 있다. AI를 활용하면 비슷한 형태의 앱을 더 많은 사람이 더 빠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니어 개발자에게 이것은 부담이지만, 동시에 방향을 바꿀 신호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기능을 만들 수 있다”에서 멈추기보다, “왜 이 기능이 필요하고, 어떤 업무 흐름을 바꾸며, 어떤 데이터 구조가 오래 버틸 수 있는가”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2. 얇은 소프트웨어는 유통과 네트워크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AI 시대에 특히 어려워질 수 있는 영역은 기능이 얇은 소프트웨어다. 예를 들어 개인 생산성 도구, 작은 자동화 앱, 단일 목적의 B2C SaaS는 아이디어가 좋아도 금방 비슷한 대안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시장에서는 기능 구현보다 다음 요소가 더 중요해질 수 있다.
- 사용자를 먼저 모을 수 있는 유통 채널
- 계속 떠올릴 수 있는 브랜드와 신뢰
- 빠르게 실험할 수 있는 자본과 팀
- 사용자들이 서로 연결되어 떠나기 어려운 네트워크 효과
- 제품 안에 쌓이는 데이터와 개인화 경험
그래서 Slack처럼 사용자 간 interaction이 강한 서비스, GitHub처럼 생태계와 네트워크가 있는 서비스, Notion처럼 콘텐츠와 협업 흐름이 쌓이는 서비스는 단순 기능 복제만으로 대체하기 어렵다. 반대로 “혼자 쓰는 작은 기능”에 가까운 도구는 사용자가 직접 만들거나, AI가 생성한 여러 대안 중 하나로 빠르게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것도 모든 B2C SaaS가 망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용자의 습관을 잘 잡거나, 특정 집단의 문제를 깊게 해결하거나, 데이터와 커뮤니티가 쌓이는 제품은 여전히 강해질 수 있다. 다만 기능 구현만으로 방어되는 영역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3. 제조 도메인은 기능보다 flow가 먼저다
제조 도메인이 흥미로운 이유는 여기서 나온다. 제조 소프트웨어는 보통 “기능 하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작업지시, 공정, 설비, 자재, LOT, 품질 검사, 불량, 재작업, 출하, 이력 추적이 서로 연결된다.
예를 들어 검사 기록 기능을 만든다고 해보자. 겉으로 보면 입력 폼과 목록 화면이면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질문이 훨씬 많다.
- 검사 대상은 제품인가, 작업지시인가, LOT인가?
- 검사 기준은 품목마다 다른가, 공정마다 다른가?
- 불합격이면 재검사, 재작업, 폐기 중 어떤 흐름으로 가는가?
- 누가 검사 결과를 수정할 수 있는가?
- 수정 이력은 어디까지 남겨야 하는가?
- 나중에 불량 원인을 추적하려면 어떤 관계를 저장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단순한 UI 구현 문제가 아니다. 업무 flow, 데이터 모델링, 권한, 이력, 예외 처리의 문제다. AI가 코드를 빠르게 만들어줘도, 이런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시스템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
제조 도메인에서 개발자는 “화면을 만드는 사람”을 넘어 “현실의 흐름을 소프트웨어 구조로 바꾸는 사람”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이 지점이 주니어 개발자에게 중요한 훈련장이 될 수 있다.
4. 제조업에는 아직 디지털 전환의 여지가 남아 있다
제조업은 오래된 산업이지만, 디지털 전환이 모두 끝난 산업은 아니다. 국내 기준으로도 중소벤처기업부와 스마트제조혁신추진단이 발표한 2024년 스마트제조혁신 실태조사에 따르면, 공장 보유 중소·중견 제조기업 중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기업은 19.5%다. 도입 기업 중에서도 75.5%는 기초 단계에 머물러 있고, 제조AI 도입률은 0.1% 수준으로 발표되었다.
해외 선도 제조기업도 완전히 끝난 상태라기보다 계속 기반을 만드는 중이다. Deloitte의 2025 Smart Manufacturing 조사에서는 향후 24개월 투자 우선순위로 데이터 분석, 클라우드, AI, IIoT가 언급된다. AI/ML과 생성형 AI 역시 시설 또는 네트워크 수준의 도입이 진행 중이지만, 동시에 파일럿과 실험도 계속되고 있다.
이 숫자들을 보면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은 이미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자 관점에서는 아직 연결되지 않은 데이터, 시스템화되지 않은 업무, 사람이 기억으로 처리하는 예외, 엑셀에 갇힌 flow가 많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이런 환경은 편하지 않다. 요구사항이 깔끔하지 않고, 현장마다 용어가 다르고, 예외도 많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개발자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
5. 주니어 개발자는 무엇을 차별화해야 할까
AI 시대에 주니어 개발자가 제조 도메인을 공부한다면, 목표를 “제조 지식을 모두 외우기”로 잡을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MES, ERP, QMS, WMS, SCADA를 전부 깊게 알 필요도 없다.
대신 다음 능력을 조금씩 키우는 것이 좋다.
- 업무의 시작, 중간 상태, 종료 조건을 그리는 능력
- 화면보다 먼저 데이터의 관계를 생각하는 능력
- 정상 flow와 예외 flow를 나누어 보는 능력
- 이력과 추적성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는 능력
- 현장 사용자와 관리자 사용자의 관점 차이를 구분하는 능력
- AI가 만든 코드를 도메인 규칙에 맞게 검증하는 능력
결국 차별화의 방향은 “AI보다 코드를 더 빨리 치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오래 버티기 어렵다. 더 나은 방향은 “AI가 구현할 수 있도록 문제를 잘 정의하고, AI가 만든 결과가 현실의 업무에 맞는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제조 도메인은 이 능력을 훈련하기 좋다. 현실의 제약이 분명하고, 데이터의 의미가 업무 결과와 연결되며, 잘못된 설계가 현장의 혼란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마무리
“순수 소프트웨어는 끝났다”는 말은 너무 빠른 결론이다.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중요하고, 앞으로도 더 많은 산업의 내부로 들어갈 것이다. 다만 기능 구현만으로 이기는 소프트웨어는 점점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AI가 구현의 속도를 올릴수록, 개발자의 차별점은 구현 이전과 이후에 생긴다. 어떤 문제를 고를 것인가. 어떤 flow를 시스템화할 것인가. 어떤 데이터를 남길 것인가. 어떤 예외를 설계에 포함할 것인가. 어떤 의사결정을 돕는 소프트웨어를 만들 것인가.
제조 도메인은 이 질문들이 살아 있는 영역이다. 그래서 제조 소프트웨어는 주니어 개발자에게 단순히 “취업할 수 있는 분야 하나”가 아니라, 구현 너머의 개발자로 성장하기 위한 좋은 훈련장이 될 수 있다.
Q&A
Q. 순수 소프트웨어는 정말 끝난 건가요?
아니다. 끝난 것은 순수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기능 구현만으로 오래 방어되는 제품이 줄어드는 흐름에 가깝다.
Q. AI가 코드를 잘 만들면 주니어 개발자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문제 정의, 데이터 모델링, 업무 flow 이해, 예외 처리, 결과 검증 능력을 키워야 한다. AI가 코드를 만들수록 무엇을 만들지 결정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Q. 제조 도메인은 왜 차별화에 도움이 되나요?
제조 도메인은 현실의 업무, 설비, 자재, 품질, 이력이 얽혀 있다. 단순 CRUD보다 flow와 데이터 관계를 이해해야 하므로 설계 감각을 기르기 좋다.
Q. 제조업을 잘 모르는데 시작해도 될까요?
시작해도 된다. 처음부터 모든 공정과 장비를 알 필요는 없다. 작업지시, 검사 기록, 설비 점검, LOT 추적처럼 작은 업무 하나를 골라 flow와 데이터를 그려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Q. 주니어 포트폴리오로는 무엇을 만들면 좋을까요?
기능이 많은 앱보다 업무 흐름이 보이는 작은 제조 앱이 좋다. 예를 들어 검사 기록 앱, 설비 점검 앱, 작업지시 관리 앱처럼 상태, 이력, 권한, 예외가 드러나는 주제가 좋다.
참고 자료
- Gartner, Gartner Says 75% of Enterprise Software Engineers Will Use AI Code Assistants by 2028
- Andreessen Horowitz, In Consumer AI, Momentum Is the Moat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2024년 스마트제조혁신실태조사 결과 발표
- Deloitte, 2025 Smart Manufacturing and Operations Surv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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